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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리포트

美 백화점들에 ‘최악의 해’가 될 2017년 기수 : 22기
  • 작성자 : 이재철
  • 소속: 매일경제
  • 연수기관 : 미국 워싱턴대

“여기 정말 백화점 맞아?”

한국에서 시애틀을 방문하는 가족과 친지, 지인들과 쇼핑을 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받는 질문입니다. 쇼핑 천국인 미국의 거대 백화점의 화려함을 기대했건만, 막상 매장을 둘러보니 손님도 적고 상품들은 아울렛처럼 어수선하게 진열돼 있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런 질문에 필자는 주저 없이 대답합니다. “맞아요. 미국에서 한국 백화점을 기대하면 안 돼요. 지금 미국 백화점들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워싱턴주에 도착한 필자도 당시 시애틀이나 인근 오레곤주의 포틀랜드 주변 백화점을 찾을 때마다 갈수록 삭막해지는 실내 풍경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과 6년 전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만났던 노드스트롬(Nordstrom), 메이시즈(Macy’s) 등 대표적 백화점들은 늘 손님으로 매장 안이 북적였고 각 코너마다 배치된 직원들이 특히 아시아 고객을 상대로 추가 세일을 귀띔하며 마케팅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의 백화점들은 아마존 등 온라인 유통업체들에 시장을 뺏기고 심각한 구조조정 위기에 직면한 상태입니다. 당연히 매장 안에 진열된 상품의 가짓수와 소위 ‘신상’도 줄어들고 잇단 인력감축으로 판촉에 열을 올려야 할 직원들마저 사라졌습니다.

 

제가 자주 방문하는 앨더우드몰(Alderwood Mall)의 사례를 들어보죠. 이곳에는 노드스트롬과 메이시스를 비롯해 시어스(Sears), 제이시페니(JCPenny), 콜스(Kohl’s) 등 백화점업계 ‘5총사’가 총집결해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럭셔리한 편에 속하는 노드스트롬과 메이시스가 화장품, 의류, 보석, 신발 등 주요 코너별로 2~3명의 직원들을 배치할 뿐 나머지 3곳은 오직 계산대(Customer Service)에만 직원들이 나와 있습니다.

 

계산만 하는 직원들이다 보니 예컨대 의류 매장에서 적당한 사이즈의 제품을 찾고 싶어도 제때 불러 도움을 받을 직원이 없습니다. 의류코너의 피팅룸을 가봐도 제대로 정리가 안 된 의류가 널려 있어 길거리 노점상을 연상케 할 정도입니다. 얼마 전 제이시페니에서 리바이스 청바지를 집어들고 중국계로 보이는 계산대 직원에게 “왜 피팅룸이 이렇게 지저분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역시나 “인력감축으로 정리를 할 스태프가 없다”고 잘라 말하더군요.

 

화려했던 미국 백화점들의 몰락은 숫자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 발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4월 6일까지 미국의 오프라인 유통매장 폐점 규모는 2,880개로 지난 2016년 전체 폐점 규모(2,056개) 수를 넉 달만에 추월했습니다. 강력한 구조조정 한파가 불었던 2015년(5,077개)과 비교해도 벌써 절반을 훌쩍 넘어선 수치입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올해 관전평은 더욱 암울합니다. 무려 8,640개의 유통매장이 올해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측해 오프라인 유통시장 근로자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고 있습니다.

 


매년 폐점되는 미국의 오프라인 유통매장 규모, 자료=크레디트스위스

 

월스트리트저널에서도 메이시스나 노드스트롬 관련 기사가 나오면 십중팔구는 매장 폐쇄 등 구조조정에 관련된 이슈입니다. 백화점을 주축으로 미국 오프라인 유통매장들의 폐점 규모가 올해 ‘최악’이 될 것임을 각종 뉴스 보도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필자가 자주 이용하는 제이시페니의 경우 115년 전통을 자랑하는 백화점이지만 현재 중저가 백화점으로서 애매한 시장 포지셔닝 때문에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제이시페니도 관련해서 얼마 전 미국 내 41개주에 걸쳐 총 138개 매장을 폐쇄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5,000명 안팎의 대규모 인력감축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비용을 줄여 온라인 시장에서 재기의 기반을 쌓아 올리겠다는 게 이 백년기업의 구상이지만, 이는 노드스트롬, 메이시스 등 다른 백화점 업체들도 풀지 못하는 공통의 목표이자 난제입니다.      
 


미국 워싱턴주 앨더우드몰의 제시이페니 전경

 

 앨더우드몰에서 제이시페니와 마주하고 있는 백화점 시어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지난 3월 시어스의 모기업 ‘시어스홀딩스’는 연례보고서를 내고 스스로 “존속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고해성사를 할 정도였습니다. 관련 보도를 보면 시어스의 누적 부채는 42억 달러로 올해 5조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7년 뒤인 2024년이면 창립 100주년을 맞게 되지만 이 때까지 시어스 백화점을 미국 대륙에서 찾아볼 가능성이 무척 희박하다는 뜻입니다. 1974년 시카고에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어스 타워를 세우며 미국 최고의 소매기업으로 올라섰지만 30여 년 뒤인 2005년 K마트에 흡수되며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실정입니다.

 

비교적 선전하고 있는 백화점이었던 노드스트롬마저 얼마 전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충격적인 관련 뉴스가 터져 나왔습니다. 6명의 가족으로 구성된 노드스트롬 주식회사와 이사진들이 노드스트롬을 비공개 기업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경우 더 이상 노드스트롬은 더 이상 주식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게 돼 자금 확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같은 검토를 하는 배경에는 ‘이미 백화점 주식은 시장 투자자들에게 외면 받은 지 오래’라는 현실적 인식이 깔려 있을 것입니다. 비공개 기업으로 전환해 시장 공개 부담을 줄이면서 내부 경영에 전념해 다시 회사를 도약시키겠다는 게 노드스트롬 이사진들의 구상이라고 합니다. 또 백화점에 비해 수익성이 좋은 할인점 형태인 노드스트롬 랙(RACK)을 키우는데 선택과 집중을 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도 친숙한 이름인 메이시스 백화점은 어떤 상황일까요. 메이시스의 2017 회계연도 1분기 매출은 53억 4,000달러로 시장 기대치(57억 4,000만 달러)를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이 같은 실적이 발표된 날 메이시스 주가는 17% 곤두박질쳤습니다. 1858년 설립돼 미국의 백화점업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인 이 업체는 올해 총 68개 점포를 폐쇄키로 결정한 상태입니다. 이에 따른 인원감축 규모는 무려 1만여 명에 달합니다.

 

인력감축에 따른 고육지책일까요. 메이시스는 얼마 전 전국 매장의 신발 코너를 고객 ‘셀프서비스’ 기반으로 운영한다고 밝혔습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고객이 알아서 음료수와 냅킨, 소스류를 챙기듯 판매사원의 도움 없이 고객이 알아서 발에 맞는 크기와 색상의 신발을 찾아가라는 식입니다. 셀프서비스 전환 배경과 관련해 메이시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요즘 고객들이 친절한 서비스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직원 도움 없이 혼자 마음대로 원하는 제품을 신어보고 고르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뭔가 궁색해 보이는 이 설명이야말로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있는 백화점 업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한국으로 돌아와보죠. 롯데·신세계·현대가 쥐고 있는 우리의 백화점 유통시장은 다행히 플러스 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형마트보다 성장세는 줄었지만 수조 원의 적자에 허덕이는 미국 백화점 업계에 비하면 플러스 성장 하나만으로도 다행한 일입니다. 여기에는 한국 소비자 못지 않게 백화점에서 고가의 명품에 과감히 지갑을 여는 중국과 일본 등 해외 관광객들의 힘도 크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노드스트롬, 메이시스, 제이시페니, 시어스, 콜스 등 공룡업체간 수천 개의 점포 경쟁이 벌어졌던 미국과 달리 한국은 소수의 3개 업체가 주도하면서 출혈 경쟁을 피할 수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이 같은 경쟁 제한적 환경 때문인지 역으로 한국의 백화점들은 입점업체에 대한 과도한 판매수수료 등 ‘갑질 논란’으로 사회적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백화점, 마트 등 오프라인 시장을 아직도 선호하는 한국의 소비자 특성 역시 한국 백화점들의 선전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로 꼽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구매 제품에 대해 영수증만 있으면(심지어 일상 생활에서 사용한 적이 있더라도) 원활하게 환불과 교체를 해주는 유통환경이 정착돼 있습니다. 미국 옷가게에서 의류를 고르다 보면 특히 셔츠 품목에서 ‘이거 누가 입었던 것 아냐?’라는 의문이 절로 드는 상품이 눈에 들어올 때가 많습니다.

 

반면 한국의 유통업체들은 단순 변심에 따른 환불 금지 등 무척 엄격한 환불·교체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엄격한 환불 정책은 곧 신중한 구매패턴으로 이어지고, 4차 산업혁명이 태동한 지금까지도 매장에 직접 들러 꼼꼼하게 상품을 살펴야 하는 오프라인 중심적 소비행태를 유지시키는 중요 요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온라인 시장의 파고에 휩쓸려 사상 최악의 해를 맞이 하고 있는 미국 백화점 업체들의 현실은 한국의 유통시장에 다양한 시사점을 남깁니다. 개별 백화점들의 특화한 시장 경쟁력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반대로 소수 사업자 위주로 짜여진 유통 시장의 경쟁 제한적 환경, 그리고 소비자 권리에 비친화적인 기업과 정부의 관련 정책들도 함께 터 잡아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환경 속에서 한국의 기업들이 과연 거대한 4차 산업혁명의 파고 아래 어떤 혁신을 준비하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아직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업체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시애틀 다운타운 파인스트리트에 위치한 메이시스 백화점을 방문하기를 권합니다. 어두침침한 조명 속 신제품보다 재고상품이 즐비하고 판매직원이 사라져 음침한 기운마져 느껴지는 그 몰락의 풍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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