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우 에세이

해외리포트

조지프 나이, 콘돌리사 라이스 그래서 더 특별한 수업참관기 기수 : 22기
  • 작성자 : 정원수
  • 소속: 동아일보
  • 연수기관 : 미국 존스홉킨스대

“워싱턴 DC, 그 중에서도 존스홉킨스대에서 1년 동안 연수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냐?”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무엇보다 존스홉킨스대의 SAIS(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 수업을 청강(auditing)한 걸 꼽고 싶다. 대학원 수업이야 미국 어디에 있든 가능한 것이겠지만 SAIS 청강은 워싱턴 DC라는 지리적인 이점과 맞물려 매우 특별했다.

 

2016년 7월부터 연수를 시작하면서 매 학기 1과목씩 수업을 청강했다. 청강은 교수의 허가를 우선 받아야 하는데다 필자가 연수 중인 SAIS 산하 USKI(US Korea Institute)가 과목당 1,000불 이상의 수업료까지 지불해야 하는 거라 결코 가볍게 여길 순 없었다. 첫 학기는 북한 관련으로 ‘North Korea: Policymaking primer’, 두 번째 학기는 중국 관련으로 ‘US-China Relations’ 수업을 들었다. 북한 관련 수업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6시, 중국 관련 수업은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오전 8시부터 시작해 3시간 가량 진행됐다. 북한 관련 강의는 내용도 다소 기초적인데다 시점도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 시기여서 일종의 예열 차원이었다면 두 번째 학기에 들은 과목은 여러 가지 점에서 인상 깊었다.

 

국제대학원(SAIS) 중국학과장 데이비드 램튼(David M. Lampton) 교수는 미중 수교 초기인 1970년대부터 중국을 방문했으며, 미국 내 National Committee on U.S.-China Relations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이다. 그는 중국과 홍콩, 대만의 정치인과 경제인, 관료, 학자 등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꾸준히 중국을 방문하면서 수업 시간이 아니면 듣기 어려운 흥미로운 얘기들을 쏟아냈다.

 

단, '수업시간 중에 있었던 얘기를 밖으로 공표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게다가 대선 캠페인 때부터 중국과 날을 세웠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 사드 배치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강대국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시의성까지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램튼 교수의 열정적인 강의를 듣고 나면 그 동안 몰랐던 중국의 실상, 그리고 중국과 그 주변국과의 관계, 미국의 대중국 관계 변화 등에 대해 새삼 놀랐던 점이 한두 번이 아니다.

 

폼프렛의 저자 직강과 램튼 교수의 권위


교수가 첫 강의를 듣기 위해 읽고 오라고 한 책의 제목은 ‘The Beautiful Country and the Middle Kingdom’이었다. 책 표지에는 美國, 中國이라는 한자어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책의 부제가 ‘America and china, 1776 to present’인데 말 그대로 미국과 중국 관계의 기원부터 현재까지의 관계를 정리한 책이다. 미국이 독립전쟁을 하던 1776년, 뉴햄프셔 출신의 25살 청년 John Ledyard가 선교 활동을 위해 중국으로 갔다가 하와이를 거쳐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뒤 유럽 외의 새로운 무역 대상을 개척하게 되는 과정을 a new frontier 라는 소제목 아래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수교한 1970년대부터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한 240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램튼 교수는 수업 시간에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면서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을 설명했다. 또 저자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저자는 미국 내에서도 중국에 관해 가장 해박한 지식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언론인 존 폼프렛(John Pomfret)이었다. 스탠퍼드대에서 동아시아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1979년 미국과 중국이 정식으로 수교한 직후인 1980년 중국 난징대에서 유학했다. AP통신의 베이징 특파원 시절인 1989년에는 천안문 사태를 취재했는데, 억울하게도 학생 조직과 연계돼 있다는 중국 당국의 주장으로 추방됐다.

 

수업을 청강하던 올해 2월 16일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윌슨센터의 키신저연구소(Kissinger Institute) 주관으로 폼프렛이 자신이 쓴 이 책을 직접 소개하고, 질문을 받는 세미나가 낮에 열렸다. 이른바 저자 직강인 셈이다. 키신저연구소의 Director인 Robert Daly는 이 자리에서 “중국 분야의 최고전문가인 존스홉킨스의 램튼 교수가 최근의 미중 관계를 A Tipping Point라고 했다”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교수가 칭찬하는 저자를 세미나에서 직접 만나고, 내가 수업을 듣는 교수가 최근에 했던 말이 권위 있게 인용되는 세미나 현장, SAIS가 아니라면 쉽게 하기 어려운 경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키신저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폼플릿 초청 세미나

 

램튼 교수는 수업 시간에 존스홉킨스대와 근대화 초기 중국과의 특별한 관계, 그리고 오랜 인연에 대한 설명도 비중있게 했다. 청나라 말기인 1912년 위안스카이의 legal advisor였던 Frank Goodnow는 중국 헌법 기초작업에도 참여했는데, 그는 그 뒤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 존스홉킨스대학의 3대 총장을 지냈다. 존스홉킨스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실용주의자이자 교육자인 존 듀이는 1919년 중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과학과 교육을 전파했다. 20세기 초반 당시로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medical center가 중국에 들어서는 과정에도 존스홉킨스대의 medical 분야가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내가 공부하는 이곳이 바로 미국과 중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여는데 비중있는 역할을 했던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바로 그 자리에서 미중 관계를 공부하니 수업 몰입도가 더 커졌다.

 

SAIS 교수진도 청중이 된 나이 교수 강연회


한 한기 동안 미중관계 수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미중 관계의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교수는 수업 중에 “과연 중국은 미국을 대신하는 강대국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던졌다. 램튼 교수는 그러면서 수강생에게 강의 하나를 소개했다.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석좌교수가 올해 3월 1일 학교에 초청돼 특강을 한다는 것이다. 강의주제는 ‘The Future of the American World Order?’였다.

 

국제관계에 있어 나이 교수가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했다. 그는 종종 워싱턴에 들리긴 하지만 공개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1년에 1,2차례에 불과하고, 강연을 하는 경우는 더 흔치 않다고 한다. 기자가 여기로 연수 온 지난 해 여름 이후에는 미국 의회에서 열린 지난해 가을에 패널로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간단한 코멘트가 그가 한 말의 전부였다.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석좌교수의 특강 

 

나이 교수의 강연장에 가서 깜짝 놀랐다. 오후 4시에 강연이 시작이어서 늦지 않게 도착했는데도 500명 정도의 참석자가 SAIS에서 가장 큰 Kennedy Auditorium을 가득 채웠다. 뒷좌석에 앉는 기자는 TV 모니터로 멀리서 나이 교수를 지켜봐야 했다. 강연자 바로 앞 두줄 정도는 모두 SAIS 교수진이 앉아 있었고, 그 자리엔 램튼 교수도 있었다. 강연에 참석한 한 교수가 얘기한 “미국의 모든 대학은, (심지어 존스홉킨스대도) 정치학에 있어 하버드대의 지적(知的) 식민지”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이 교수의 강의 내용은 그가 쓴 ‘Is the American Century over’라는 내용과 비슷했다. 거의 책이나 강연은 단순했지만 아주 명쾌했다. 중국이 미국의 파워를 replace하는 게 아니며, 최근 중국의 성장 등은 크게 본다면 미국이 1945년 이후 국제사회에서 구축해온 이른바 ‘liberal international order’에 편입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는 그는 중국에 맞서는 것(against china)이 아니라 협력(cooperate)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본 미국의 세기는 1947년 영국이 크림반도를 더 이상 support할 수 없다고 보고,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시작됐으며, 이어 1948년 마셜플랜, NATO 등으로 굳혀졌다. 그는 최근 중국이 미국이 만든 국제질서에 무임승차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원래 글로벌 goods는 free riding이 본질”이라면서 “1930년대 영국이 (국제질서의) producer였다면, 미국은 free rider였다”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지금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려고 한다(China’s power is about to pass US)고 하지만 중국의 태도는 미국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 근거로 중국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유엔에 내고 있고, IMF에 참여하며 2009년 코펜하겐과 2015년 파리협약에 참여하는 등 system 파괴자가 아니라 미국의 국제질서에 조금씩 더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쓴 저서 ‘Soft power’를 예로 들며 정보혁명, 톱 20개 대학, 동맹국의 숫자 등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근거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외교문제 위협”


그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해인 2016년 미국의 대외정책이 급진적인 변화(radical change)를 맞이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가 내세우는 American first에 대해 그는 “미국은 first고 나머지는 second라는 건데, great word는 아니다”라며 혹평하며 1948년 이후 메이저 정당에서 그런 주장이 나온 건 처음이라고 했다. TPP를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반대하는 것 등을 예로 들며 나이 교수는 ‘Threat within’이라는 미국 내부의 위협으로 인해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외교문제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올해 5월 12일에는 콘돌리사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같은 장소에서 강연을 했다. 라이스 전 장관은 매년 워싱턴을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케네디센터에 피아노 공연을 하곤 했다. 올해는 첼리스트 요요마와 협연을 했는데, 요요마의 첼로 반주에 맞춰 라이스가 피아노를 쳤다. 그는 강연에서 최근에 펴낸 자신의 책 ‘Democracy’를 소개했는데, 어떤 악조건이라도 민주주의를 promote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연 내내 그가 쏟아내는 북한과 중국 등 그가 언급한 수십 개의 나라 이름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콘돌리사 라이스 전 국무장관 초청 강연 

 

마지막 수업 시간에 램튼 교수는 2000년부터 2005, 2010,2015, 2020년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그리고 상대적으로 미국의 힘은 얼마나 축소되고 있는지를 통계로 보여주면서 이런 ‘새로운 시대’(new period)를 맞이하는 미래의 미국 정책결정권자가 대다수인 수강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This is your task. How you gonna manage? What’s your strategy.” 그러면서 4가지 답변을 내놓았다.

 

첫 번째는 중국 앞에 어떤 변수가 놓여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숫자대로 중국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미국 혼자 중국에 맞서는 게 아니라 미국의 친구를 찾아야 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institutional structure를 이용하는 것이며, 마지막 네 번째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으면서 그는 “우리 세대는 학생들의 세대에게 중국과 더 나은 관계를 남겼다”고 강조했다.

 

수업이 끝난 뒤 램큰 교수를 따로 만나 북한 문제 등을 물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의 대북 압박에 대한 수위가 높아진 것에 대해) 지금은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국은 중국은 북한 편을 들 것이다”이라고 했다. 미국은 중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미중관계 수업은 수업 그 자체도 너무 흥미로웠지만 워싱턴 DC 여기저기서 열리는 강연 등과 연계해서 더 입체적이었고, 그래서 내게도 더 생산적이었다. 국제관계의 베스트셀러 저자, 세계최고의 교수, 전직 국무장관 등을 수업 도중에 듣는 건 커다란 행운이자 기회였다.  

이전 일상화된 미국의 기부문화
다음 美 백화점들에 ‘최악의 해’가 될 2017년